(기도하는삶) 하느님 체험과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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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788회 작성일 23-03-22 21:45본문
분별이란?
하느님의 뜻이 교회의 권위나 원로들의 명령을 통해 선명하고 정확하게 표출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교회의 권위와 전통이 도전받는 시대이고, 더욱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외적 권위나 지식보다 자신의 경험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일은 개인은 물론이고 교회 공동체에게도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분별을 뜻하는 영어 ‘Discernment’는 라틴어 ‘Discretio’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분리하다, 구별/선별하다, 결정하다’는 의미의 동사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분별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영이 일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며, 일상과 기도 중에 경험하는 여러 생각, 느낌들을 구별하여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성령인지, 자아(Ego)에 속한 것인지, 또는 탐욕이나 불신처럼 왜곡된 자아와 결합된 악한 영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분별은 무엇보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깊은 신뢰가 그 기초를 이룹니다. 올바른 분별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느님의 현존과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성령님께서는 하느님의 뜻과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로마 8:16. 요한 16:8, 13, 14. 갈라 5:22-23) 분별은 우리 일상과 기도 중에 경험하는 여러 생각과 느낌들을 구별하여, 어느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가려내는 것입니다. 때문에 분별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찾으려는 우리의 갈망과 자발성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삶을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는 끝없이 밀려오는 자극의 물줄기 중 그 일부분에만 의식을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주어지는 모든 정보에 동등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채 현실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특정한 시간에 실제로 벌어진 일 안에는 우리가 그 일에 관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지난 경험들을 기도 가운데 돌아보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보냈던 하느님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분별의 시간은 우리의 삶을 지나가신 하느님의 뒷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분별을 이해하는 다른 태도와 입장들
분별에 대한 이해와 방법에 있어 그리스도교 전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해와 입장을 보여 온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직접 계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칼빈John Calvin의 경우는 체험을 통한 분별에 대하여 의심의 태도를 보였던 반면 예수회 설립자인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de Loyola나 요한 웨슬리John Wesley의 경우에는 보다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였습니다. 고든 스미스Smith, Gordon는 자신의 저서 ‘분별의 기술’에서 분별에 접근하는 입장을 ‘청사진적 접근’과 ‘지혜 관점의 접근’으로 대비시켜 설명하였습니다. 청사진적 접근은 하느님께서는 각 개인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자기고 계시며, 각 개인은 외적인 징표들에 대한 알아차림이나 조언에 초점을 두어 하느님을 분별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지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분별에 대한 입장은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성경의 계시에 집중하면 분별과 관련한 지혜가 자라게 되고, 좋은 선택을 점점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믿습니다. 여기서는 지혜의 성장과 선택의 향상이 분별에서 중심을 차지합니다.
첫 번째 입장은 하느님의 뜻이 인간의 삶과 경험 밖에 있는 것으로 보고, 우리의 지도 위에 하느님의 오류 없는 지도를 덧씌워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가야하는 정확한 길을 알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는 강력한 노력은 아버지 하느님과 그 형상대로 빚어진 우리들 사이가 대립적인 관계로 드러나는데 하느님은 답을 아시고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하는 관계로 표현됩니다. 하느님은 마치 술래잡기 게임을 하시듯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고 ‘찾을 수 있으면 찾아 봐’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 두 번째 입장은 분별을 훈련과 노력에 의해 획득할 수 있는 지혜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스미스는 두 관점 모두 결정을 내리는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소외’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분별이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과 역동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잠재능력의 소유자들이라는 것과 하느님은 분별을 위해 우리들 지혜에만 의지하지도, 역으로 맹목적 복종만을 기대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분별이란 분별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과 함께 춤추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이 함께 추시는 춤입니다. 성령 하느님은 그 분별의 춤을 이끌어 가시고, 우리는 그 이끄심에 응답하며 하느님과 함께 아름다운 춤을 추게 됩니다. 이같은 입장은 분별에 대한 실용적 태도보다 사귐에 기초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분별이란 자신의 능력을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들을 섬기는데 사용하는 ‘협력’이라고 하였습니다.
분별과 앎의 신학
분별은 ‘앎’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틸든 에드워드 Tilden Edward는 그의 책 ‘영혼을 돌보는 영성지도’에서 ‘네 가지 차원의 앎’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설명하는 ‘앎의 차원’에 대한 이해는 영적지도 상황에서 행하는 우리의 분별과 그리스도교 분별전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는 네 가지 차원의 앎이 분절적 관계이기보다는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 관계이지만 서로 다른 차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관상적 인식으로 그것은 즉각적 인식, 해석이나 감각 이전의 순수하고 직접적이고 인식입니다. 관상적 차원의 앎은 인지의 지평 위에서 빛을 발하는 실재에 대한 느낌이 너무 친밀해서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습니다. 둘째는 심령적 인식으로 우리 영의 희미한 의식적 영역으로 실체와의 자연스러운 의식적 관계에 있는 인식입니다. 우리는 실재와 개인적 연합을 이루었음에도 더 크신 임재와는 무언가 다름을 느낍니다. 우리의 많은 영적체험은 이 차원에서 의식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서술적 인식으로 자신의 영적체험과 실체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미지와 단어들을 사용하여 표현되는 앎입니다. 이미지와 단어를 통해 표현되는 의식화는 이후 확신으로 발전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석적 인식인데 이는 서술적 인식들에 대한 해석과 구조화이며 신학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분별전통에서 무념적(Apophatic) 전통이 관상적 인식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면, 유념적(Kathaphatic) 전통은 심령적 인식이나 해석적 인식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념적 전통의 분별이 직관과 성령의 감도에 의한 즉각적 인식을 강조하고 있다면, 유념적 전통은 분별에서 정서와 감정,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이 네 차원의 인식은 단절적 관계라기보다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 관계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해석적 인식이 그 사람의 심령적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역으로 한 사람의 심령적 인식이 해석적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야뽑 강가에서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꿈을 꾼 야곱의 심령적 체험은 지성소에만 머무시는 하느님에 대한 야곱의 해석적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적지도와 분별의 과정에서 해석적 작업을 할 때 우리는 피지도자가 자신의 심령적 인식의 조명을 받게 할 필요가 있으며, 하느님의 자유로운 개입에 자신을 여는 관상적 태도로 자신을 열어 두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즉각적인 임재를 위한 갈망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자신이 가진 개념들을 떠돌며 인식의 변두리를 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빠지는 유혹은 애써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임재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힘으로 규명해 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대한 믿음의 자리에서 보면,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이 영적경험이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의미의 영적경험은 우리의 영과 삶속에서 하느님의 본성과 인도하심을 특별히 드러낼 수 있는 사건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느님 현존의 표지들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깨닫게 하고, 사랑으로 응답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표지들은 우리에게 일종의 영적지식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사색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단정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느님의 지속적인 주도권과 인간의 적극적인 반응의 열매입니다.
분별과 하느님 체험
요사이 기도 중에 경험이든, 일상 속에서 한 경험이든 그것이 당신에게 하느님 체험이라고 여겨지는 한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한 순간이 떠올랐다면, 그 경험 속에서 당신과 하느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돌아보십시오. 그 관계의 특질들이 무엇인지를 성령께서 보여주시도록 기도해 보십시오. 이렇게 당신의 경험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펴본 후, 다음 질문에 답하여 보십시오.
1) 당신은 그 하느님 체험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 경험을 어떻게 느꼈습니까?
2) 그 체험 가운데 좋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을 느낀 부분이 있습니까?
3) 그 체험의 질, 특징, 맛들을 묘사해보십시오.
그 체험 속에서 하느님은 어떤 분과 같았고, 당신은 누구와 같았습니까?
4) 그 체험이 당신 생활에 남긴 단기적인, 그리고 장기적인 결과(열매)들은 무엇입니까?
5) 그 체험이 당신 삶에 던지는 질문들이 있습니까? 무엇입니까?
제럴드 메이Gerald G. May는 우리의 체험이 참된 하느님 체험이라면, 거기에는 참된 하느님 체험을 규정하는 몇 가지 특징들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특징을 세 가지로 정의하였는데, 첫째, 그 체험은 우리 삶의 의미있는 통합을 창출하고, 둘째, 자신이나 타인을 위한 좋은 열매를 맺으며, 셋째,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경향성을 약화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이같은 기준을 근거로 앞에서 하였던 당신의 성찰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당신의 체험이 당신의 태도와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그리고 계속 진행될 하느님과의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아빌라의 데레사Teresa of Ávila는 그녀의 저서 ‘영혼의 성城’에서 우리가 기도 중에 듣거나 보게 되는 말씀과 이미지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하기 위한 몇 가지 지침들을 각 궁방에서의 자신의 기도경험에 근거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기도 중에 경험한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첫째, 기도 중에 듣는 말들이나 이미지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며, 둘째, 힘과 권위가 있어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셋째, 우리를 고요하고 평화롭게 한다고 말합니다. 넷째, 기억하기 쉽고 다섯 째, 마음 속 깊이 진실로 다가오며, 여섯 째,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움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일곱 째, 짧은 시간 안에 지성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말하고 여덟 째, 언어로 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아홉 째,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고, 하느님께 봉사하고픈 더 큰 갈망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에 따라 여기서 언급한 것들 외에 또 다른 기준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전해 준 이상의 지침들은 현대인들에게도 자신의 기도체험을 분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체험이 어떤 경우에 해당하든 우리는 분별을 위하여 기도, 성경연구, 침묵피정, 영성일지 쓰기 등을 통해서 우리의 체험에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고찰할 때 자신의 영적지문에 관해 배울 수 있습니다.
분별의 방식들
우리들 대부분은 이미 스스로가 선호하는 익숙한 분별의 방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하지 못할 수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그 방식들을 거의 자동적으로 사용하면서 살아가갑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성경 읽기와 묵상, 어떤 사람은 신뢰할만한 사람을 찾고, 또 어떤 사람은 홀로 조용한 시간을 갖거나, 산책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분별을 위한 실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상당히 폭넓은 다양한 분별의 방식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분별의 방식은 다를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하느님께 열린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분별의 방식들에는 성경읽기, 공부, 예배, 기도, 금식, 영적지도, 침묵, 개인 피정, 성찬 등 사람과 상황에 따라 각기 선호하는 방법들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느님을 경청하고 따를 수 있도록 일깨울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분별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별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길, 하느님께서 가져가시는 것은 우리가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기를, 하느님께서 보류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결핍의 시간을 우리가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라면 기꺼이 행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분별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께서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한 후에 분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분별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향하여 자신을 열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경청하고, 따르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분별의 방식들이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당신을 계속하여 돕고 있다면 당신은 다른 방식들을 탐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이전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방식들을 사용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감지하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의 특정한 분별방식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해 온 것이 아닌지, 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하느님보다 방식을 더 신뢰한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개발해야 할 다섯 가지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분별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개발하여야 할 다섯 가지 태도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첫째는 내적 자유입니다. 그것은 부와 명예, 교만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자유입니다. 내적 자유의 결핍은 삶을 하느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게 만들고, 자기중심적 경향은 참된 분별을 방해합니다. 둘째는 지식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장 깊은 바람,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은혜와 유혹의 역사를 아는 것은 우리의 분별을 위해 핵심적인 배경을 제공해 줍니다. 셋째는 상상력입니다. 분별의 과정은 우리가 쉼을 갖고 재충전되었을 때 더욱 생동감을 띨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새로운 가능성들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인내입니다. 하느님을 기다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우리 자신의 발달과정을 기다리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하여 우리는 즉각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에 안주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 유혹을 이기는 것은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행동하는 용기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분명하게 여겨질 때조차 결정을 인정하지 않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별은 실천을 통해 완성되며, 그 결정의 열매를 살펴봄으로써 분별의 결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별의 요소와 질문들
분별을 위해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의 분별을 사용하든, 우리가 어떤 질문을 놓고 기도를 하던 분별의 과정은 하느님의 사랑, 우리의 자발적인 응답과 순명, 그리고 우리의 관점 대신 하느님의 관점을 우선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우리의 분별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분별한 것이 그리스도의 태도와 행동에 부합되는가? 성경의 가르침이나 가치들과 일치하는가? 우리의 개인적 역사와 현재 내가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 부합되는가? 다양한 관계들과 상황들을 통해 우리 안에 맺히는 성령의 열매가 있는가? 나에게 하느님의 요청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있는가? 내면의 중심에 자리 잡은 위안과 평화가 있는가?... 이같은 질문들은 분별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우리의 분별이 올바르게 이루어졌는지를 성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하느님의 뜻이 교회의 권위나 원로들의 명령을 통해 선명하고 정확하게 표출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교회의 권위와 전통이 도전받는 시대이고, 더욱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외적 권위나 지식보다 자신의 경험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일은 개인은 물론이고 교회 공동체에게도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분별을 뜻하는 영어 ‘Discernment’는 라틴어 ‘Discretio’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분리하다, 구별/선별하다, 결정하다’는 의미의 동사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분별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영이 일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며, 일상과 기도 중에 경험하는 여러 생각, 느낌들을 구별하여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성령인지, 자아(Ego)에 속한 것인지, 또는 탐욕이나 불신처럼 왜곡된 자아와 결합된 악한 영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분별은 무엇보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깊은 신뢰가 그 기초를 이룹니다. 올바른 분별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느님의 현존과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성령님께서는 하느님의 뜻과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로마 8:16. 요한 16:8, 13, 14. 갈라 5:22-23) 분별은 우리 일상과 기도 중에 경험하는 여러 생각과 느낌들을 구별하여, 어느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가려내는 것입니다. 때문에 분별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찾으려는 우리의 갈망과 자발성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삶을 면밀히 살펴보면 우리는 끝없이 밀려오는 자극의 물줄기 중 그 일부분에만 의식을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주어지는 모든 정보에 동등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채 현실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특정한 시간에 실제로 벌어진 일 안에는 우리가 그 일에 관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지난 경험들을 기도 가운데 돌아보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보냈던 하느님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분별의 시간은 우리의 삶을 지나가신 하느님의 뒷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분별을 이해하는 다른 태도와 입장들
분별에 대한 이해와 방법에 있어 그리스도교 전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해와 입장을 보여 온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직접 계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칼빈John Calvin의 경우는 체험을 통한 분별에 대하여 의심의 태도를 보였던 반면 예수회 설립자인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de Loyola나 요한 웨슬리John Wesley의 경우에는 보다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였습니다. 고든 스미스Smith, Gordon는 자신의 저서 ‘분별의 기술’에서 분별에 접근하는 입장을 ‘청사진적 접근’과 ‘지혜 관점의 접근’으로 대비시켜 설명하였습니다. 청사진적 접근은 하느님께서는 각 개인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자기고 계시며, 각 개인은 외적인 징표들에 대한 알아차림이나 조언에 초점을 두어 하느님을 분별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지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분별에 대한 입장은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성경의 계시에 집중하면 분별과 관련한 지혜가 자라게 되고, 좋은 선택을 점점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믿습니다. 여기서는 지혜의 성장과 선택의 향상이 분별에서 중심을 차지합니다.
첫 번째 입장은 하느님의 뜻이 인간의 삶과 경험 밖에 있는 것으로 보고, 우리의 지도 위에 하느님의 오류 없는 지도를 덧씌워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가야하는 정확한 길을 알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는 강력한 노력은 아버지 하느님과 그 형상대로 빚어진 우리들 사이가 대립적인 관계로 드러나는데 하느님은 답을 아시고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하는 관계로 표현됩니다. 하느님은 마치 술래잡기 게임을 하시듯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고 ‘찾을 수 있으면 찾아 봐’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 두 번째 입장은 분별을 훈련과 노력에 의해 획득할 수 있는 지혜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스미스는 두 관점 모두 결정을 내리는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소외’라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분별이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과 역동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잠재능력의 소유자들이라는 것과 하느님은 분별을 위해 우리들 지혜에만 의지하지도, 역으로 맹목적 복종만을 기대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분별이란 분별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과 함께 춤추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이 함께 추시는 춤입니다. 성령 하느님은 그 분별의 춤을 이끌어 가시고, 우리는 그 이끄심에 응답하며 하느님과 함께 아름다운 춤을 추게 됩니다. 이같은 입장은 분별에 대한 실용적 태도보다 사귐에 기초한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분별이란 자신의 능력을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들을 섬기는데 사용하는 ‘협력’이라고 하였습니다.
분별과 앎의 신학
분별은 ‘앎’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틸든 에드워드 Tilden Edward는 그의 책 ‘영혼을 돌보는 영성지도’에서 ‘네 가지 차원의 앎’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설명하는 ‘앎의 차원’에 대한 이해는 영적지도 상황에서 행하는 우리의 분별과 그리스도교 분별전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는 네 가지 차원의 앎이 분절적 관계이기보다는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 관계이지만 서로 다른 차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관상적 인식으로 그것은 즉각적 인식, 해석이나 감각 이전의 순수하고 직접적이고 인식입니다. 관상적 차원의 앎은 인지의 지평 위에서 빛을 발하는 실재에 대한 느낌이 너무 친밀해서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습니다. 둘째는 심령적 인식으로 우리 영의 희미한 의식적 영역으로 실체와의 자연스러운 의식적 관계에 있는 인식입니다. 우리는 실재와 개인적 연합을 이루었음에도 더 크신 임재와는 무언가 다름을 느낍니다. 우리의 많은 영적체험은 이 차원에서 의식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서술적 인식으로 자신의 영적체험과 실체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미지와 단어들을 사용하여 표현되는 앎입니다. 이미지와 단어를 통해 표현되는 의식화는 이후 확신으로 발전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석적 인식인데 이는 서술적 인식들에 대한 해석과 구조화이며 신학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분별전통에서 무념적(Apophatic) 전통이 관상적 인식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면, 유념적(Kathaphatic) 전통은 심령적 인식이나 해석적 인식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념적 전통의 분별이 직관과 성령의 감도에 의한 즉각적 인식을 강조하고 있다면, 유념적 전통은 분별에서 정서와 감정,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이 네 차원의 인식은 단절적 관계라기보다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 관계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해석적 인식이 그 사람의 심령적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역으로 한 사람의 심령적 인식이 해석적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야뽑 강가에서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꿈을 꾼 야곱의 심령적 체험은 지성소에만 머무시는 하느님에 대한 야곱의 해석적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적지도와 분별의 과정에서 해석적 작업을 할 때 우리는 피지도자가 자신의 심령적 인식의 조명을 받게 할 필요가 있으며, 하느님의 자유로운 개입에 자신을 여는 관상적 태도로 자신을 열어 두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즉각적인 임재를 위한 갈망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자신이 가진 개념들을 떠돌며 인식의 변두리를 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빠지는 유혹은 애써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임재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힘으로 규명해 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대한 믿음의 자리에서 보면,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이 영적경험이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의미의 영적경험은 우리의 영과 삶속에서 하느님의 본성과 인도하심을 특별히 드러낼 수 있는 사건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느님 현존의 표지들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깨닫게 하고, 사랑으로 응답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표지들은 우리에게 일종의 영적지식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사색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단정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느님의 지속적인 주도권과 인간의 적극적인 반응의 열매입니다.
분별과 하느님 체험
요사이 기도 중에 경험이든, 일상 속에서 한 경험이든 그것이 당신에게 하느님 체험이라고 여겨지는 한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한 순간이 떠올랐다면, 그 경험 속에서 당신과 하느님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돌아보십시오. 그 관계의 특질들이 무엇인지를 성령께서 보여주시도록 기도해 보십시오. 이렇게 당신의 경험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펴본 후, 다음 질문에 답하여 보십시오.
1) 당신은 그 하느님 체험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 경험을 어떻게 느꼈습니까?
2) 그 체험 가운데 좋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을 느낀 부분이 있습니까?
3) 그 체험의 질, 특징, 맛들을 묘사해보십시오.
그 체험 속에서 하느님은 어떤 분과 같았고, 당신은 누구와 같았습니까?
4) 그 체험이 당신 생활에 남긴 단기적인, 그리고 장기적인 결과(열매)들은 무엇입니까?
5) 그 체험이 당신 삶에 던지는 질문들이 있습니까? 무엇입니까?
제럴드 메이Gerald G. May는 우리의 체험이 참된 하느님 체험이라면, 거기에는 참된 하느님 체험을 규정하는 몇 가지 특징들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특징을 세 가지로 정의하였는데, 첫째, 그 체험은 우리 삶의 의미있는 통합을 창출하고, 둘째, 자신이나 타인을 위한 좋은 열매를 맺으며, 셋째,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경향성을 약화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이같은 기준을 근거로 앞에서 하였던 당신의 성찰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당신의 체험이 당신의 태도와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그리고 계속 진행될 하느님과의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아빌라의 데레사Teresa of Ávila는 그녀의 저서 ‘영혼의 성城’에서 우리가 기도 중에 듣거나 보게 되는 말씀과 이미지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하기 위한 몇 가지 지침들을 각 궁방에서의 자신의 기도경험에 근거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기도 중에 경험한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첫째, 기도 중에 듣는 말들이나 이미지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며, 둘째, 힘과 권위가 있어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셋째, 우리를 고요하고 평화롭게 한다고 말합니다. 넷째, 기억하기 쉽고 다섯 째, 마음 속 깊이 진실로 다가오며, 여섯 째,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움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일곱 째, 짧은 시간 안에 지성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말하고 여덟 째, 언어로 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아홉 째,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고, 하느님께 봉사하고픈 더 큰 갈망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에 따라 여기서 언급한 것들 외에 또 다른 기준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전해 준 이상의 지침들은 현대인들에게도 자신의 기도체험을 분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체험이 어떤 경우에 해당하든 우리는 분별을 위하여 기도, 성경연구, 침묵피정, 영성일지 쓰기 등을 통해서 우리의 체험에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고찰할 때 자신의 영적지문에 관해 배울 수 있습니다.
분별의 방식들
우리들 대부분은 이미 스스로가 선호하는 익숙한 분별의 방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하지 못할 수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그 방식들을 거의 자동적으로 사용하면서 살아가갑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성경 읽기와 묵상, 어떤 사람은 신뢰할만한 사람을 찾고, 또 어떤 사람은 홀로 조용한 시간을 갖거나, 산책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분별을 위한 실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상당히 폭넓은 다양한 분별의 방식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분별의 방식은 다를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하느님께 열린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분별의 방식들에는 성경읽기, 공부, 예배, 기도, 금식, 영적지도, 침묵, 개인 피정, 성찬 등 사람과 상황에 따라 각기 선호하는 방법들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느님을 경청하고 따를 수 있도록 일깨울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분별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별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길, 하느님께서 가져가시는 것은 우리가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기를, 하느님께서 보류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결핍의 시간을 우리가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라면 기꺼이 행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분별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께서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한 후에 분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분별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향하여 자신을 열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경청하고, 따르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분별의 방식들이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당신을 계속하여 돕고 있다면 당신은 다른 방식들을 탐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이전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방식들을 사용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감지하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의 특정한 분별방식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해 온 것이 아닌지, 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하느님보다 방식을 더 신뢰한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개발해야 할 다섯 가지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분별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개발하여야 할 다섯 가지 태도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첫째는 내적 자유입니다. 그것은 부와 명예, 교만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자유입니다. 내적 자유의 결핍은 삶을 하느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게 만들고, 자기중심적 경향은 참된 분별을 방해합니다. 둘째는 지식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장 깊은 바람,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은혜와 유혹의 역사를 아는 것은 우리의 분별을 위해 핵심적인 배경을 제공해 줍니다. 셋째는 상상력입니다. 분별의 과정은 우리가 쉼을 갖고 재충전되었을 때 더욱 생동감을 띨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새로운 가능성들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인내입니다. 하느님을 기다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우리 자신의 발달과정을 기다리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하여 우리는 즉각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에 안주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 유혹을 이기는 것은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행동하는 용기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분명하게 여겨질 때조차 결정을 인정하지 않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별은 실천을 통해 완성되며, 그 결정의 열매를 살펴봄으로써 분별의 결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별의 요소와 질문들
분별을 위해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식의 분별을 사용하든, 우리가 어떤 질문을 놓고 기도를 하던 분별의 과정은 하느님의 사랑, 우리의 자발적인 응답과 순명, 그리고 우리의 관점 대신 하느님의 관점을 우선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분별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우리의 분별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분별한 것이 그리스도의 태도와 행동에 부합되는가? 성경의 가르침이나 가치들과 일치하는가? 우리의 개인적 역사와 현재 내가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에 부합되는가? 다양한 관계들과 상황들을 통해 우리 안에 맺히는 성령의 열매가 있는가? 나에게 하느님의 요청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있는가? 내면의 중심에 자리 잡은 위안과 평화가 있는가?... 이같은 질문들은 분별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우리의 분별이 올바르게 이루어졌는지를 성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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