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세이) 대림절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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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4-12-13 10:20본문
“슬기로운 지도자를 보내주겠다”
(사 1:26)
“생명은 따뜻하다.”
(한강)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눅 1:51)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습니다. 열어 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습니다. 표지에 〈시집〉이라고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습니다.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 내지에는 여덟 편의 시들이 적혀있었습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뭘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을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상자에 포개어놓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습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것을 이어주는 금실, 빛을 내는 실.
그 후 14년이 흘러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시 쓰기와 단편 소설도 좋지만, 장편 소설은 특별한 매혹이 있습니다. 내 삶과 맞바꿔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 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서 삽니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합니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됩니다.
세 번째 장편 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래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에 어떤 것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 여주인공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습니다.
그 다음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이 물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배로 기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 번째 장편 소설인 『희랍어 시간』에서는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어가는 남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여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합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합니다.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마침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한강, 노벨상 수상 강연 중에서)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글쓰기를 계속합니다. 광주 학살에 관해 쓴 『소년이 온다』에서는 잔학하게 총칼로 시민들을 학살하는 계엄군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하지만 총상 당한 사람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광주에서 계엄군에 살해되었던 수줍고 조용한 성격의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젊은 야학 교사의 물음은 작가의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작가는 자신이 독자들과 사랑과 고통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또 묻습니다.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지난 화요일(12월 3일) 저녁이었습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졸다가 10시 반 조금 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침대에 눕기 전에 휴대폰을 확인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친구로부터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문자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에이, 설마, 하다가, 티브이를 켰습니다. 포고문이 재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들었던 포고문의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 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문장 끝에 나오는 동사가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온몸을 (영혼까지도!) 짓밟는 것 같았습니다. 처단한다, 처단한다, 처단한다…. 내가 사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광주의 잔혹함이 떠올랐고, 젊은 시절의 공포가 떠올랐습니다.
티브이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국회의사당 주위에 군인들과 시민들이 뒤엉켜있었습니다. 헬기 소리도 들렸습니다. 장갑차를 시민들이 막고 있는 광경도 보였고, 군인들과 시민들이 몸싸움하는 광경도 보았습니다. 군인들이 국회의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국회 복도에서 바리케이드를 치며 계엄군을 필사적으로 막는 국회 직원들도 보았습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도봉구에서 낙선한 앵커 출신의 여성은 계엄군의 총부리를 손으로 붙잡고 울부짖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계엄해제 표결을 위해 국회위원들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출입이 통제되어 담을 넘어 들어왔다는 국회의원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총으로 중무장한 군인들은 점점 회의장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상황을 보고받았는지 국회의원들 가운데에서도 의장에게 빨리 진행하라는 고성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두 시간여 후에 계엄해제 표결이 통과되자, 계엄군들은 주춤하더니 얼마 후 하나둘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국회에서 계엄해제를 표결하면 대통령은 “지체없이” 선언해야 한다는데 세 시간이 지나도록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 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혼란을 이유로 또 비상계엄을 선언할지 몰랐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세 시간이 3년 같았습니다. 새벽 네 시 반 넘어서야 대통령은 마침내 계엄해제를 선언했습니다. 그렇게 그날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지난 며칠이 몇 년 같았습니다. 나의 현실감각은 지난 화요일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비상스러워졌습니다. 아내와 가족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정적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치 사법 폭력을 저지르던 그를 매스컴은 반란 수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정권 유지와 연장을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동안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상황이었는데, 그날 이후 그는 더이상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금요일(12월 6일)엔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주말에 기독교회관에서 시국기도회가 있으니 참석하겠느냐는 문자였습니다. 이번 주에는 다른 주와는 달리 설교 준비를 일찍 해놨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 그러겠다고 답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제, 토요일 아침, 설교문을 읽어보았는데 남의 글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뜬구름 잡는 얘기 같았습니다. 그냥 할까 다시 쓸까 고민했습니다. 속마음은 다시 쓰라고 하는데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오후 1시로 예정된 시국기도회 시간이 점점 다가왔습니다. 설교를 다시 준비하려면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 표결을 5시에 한다는 뉴스도 흘러나왔습니다. 마음이 어수선했고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나는 종로 5가로 가는 지하철 안에 있었습니다. 기독교회관에서 있었던 기도회에 참석하고 종로 5가에서 종각까지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였습니다. 선후배 지인들도 여럿 보였습니다.
저녁엔 달갑지 않은 소식이 국회에서 전해졌습니다. 여사 특검과 탄핵 표결이 다 부결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의 힘 의원들이 회의장을 나가 아예 표결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힘이 빠졌고, 속상했습니다. 설교 준비를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설교를 아예 하지 말고 설교 시간에 침묵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지나친 파격이었습니다.
자포자기한 채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잠을 설쳤습니다. 새벽 3시에 눈을 떴습니다. 좀 더 자려고 유튜브를 켰습니다. 성경을 듣다 보면 잠드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튜브를 켜자마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수상 강연이 스톡홀름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소개한 내용입니다.
사실 노벨상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언제 시간 내어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던 중이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강연은 강연이라기보다 고백적 작품 해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에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평범하면서도 근원적이었으며,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을 수상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당시 노트에 이런 글을 끄적였다고 합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그러면서 그는 또 묻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살아남는 것인가.”
묻고 또 물으면서 작가는 깨닫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자기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이라는 것을. 사랑은 심장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 이미 시로 읊었던 것처럼, “사랑은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의 정체는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마침내 발견합니다.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수상 강연을 듣고 그 여운을 음미하고 있는데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계엄 선포 다음 날인 수요일(12월 4일) 성서일과 1독서 본문이었던 예언자 이사야의 통렬한 경고(사 1:24-31)였습니다.
24 그러므로 주 곧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대적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겠다. 내가 나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여 한을 풀겠다.
25 이제 다시 내가 너를 때려서라도 잿물로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 내듯 너를 씻고, 너에게서 모든 불순물을 없애겠다.
26 옛날처럼 내가 사사들을 너에게 다시 세우고, 처음에 한 것처럼 슬기로운 지도자들을 너에게 보내 주겠다. 그런 다음에야 너를 ‘의의 성읍’, ‘신실한 성읍’이라고 부르겠다."
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회개한 백성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을 것이다.
28 그러나 거역하는 자들과 죄인들은 모두 함께 패망하고, 주님을 버리는 자들은 모두 멸망을 당할 것이다.
29 너희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우상 숭배를 즐겼으니,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가 동산에서 이방 신들을 즐겨 섬겼으므로 창피를 당할 것이다.
30 기어이 너희는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처럼 될 것이며, 물이 없는 동산과 같이 메마를 것이다.
31 강한 자가 삼오라기와 같이 되고, 그가 한 일은 불티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둘이 함께 불타도 꺼 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
해석이 필요 없었습니다. 깊이 묵상할 것도 없었습니다. 읽는 대로 간절한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잿물로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 내듯 우리의 불의를 씻고, 우리에게서 모든 불순물을 없애주소서.”
“술에 취한 폭군이 아니라 슬기로운 지도자들을 이 나라에 보내주소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회복되어 이 나라가 ‘의의 성읍’이 되게 하소서.”
“정의를 거역하는 자들과 죄인들은 모두 함께 망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우상숭배에 찌듣 주술 정권이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그들이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처럼 되게 하시며, 물 없는 동산과 같이 메마르게 하소서.”
“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자가 삼오라기와 같이 되고, 그가 한 일이 불티와 같이 되게 하소서. 이 둘이 함께 불타도 꺼 줄 사람 하나 없게 하소서.”
이런 기도를 적고 있는데 마리아의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눅 1:51-53)
이 노래를 통해 마리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십니다. 민중 위에 군림하는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십니다.
이것이 대림절에 갖는 희망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슴 벅찬 일은 작가가 말하는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인 사랑,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 사랑, 살아있는 가슴에서 팔딱팔딱 뛰는 사랑, 그리고 따뜻한 가슴과 가슴을 이어줄 금실인 사랑으로 이뤄집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광장에서 그 사랑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으며, 금실처럼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 이민재
(사 1:26)
“생명은 따뜻하다.”
(한강)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눅 1:51)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습니다. 열어 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습니다. 표지에 〈시집〉이라고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습니다.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 내지에는 여덟 편의 시들이 적혀있었습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뭘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을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상자에 포개어놓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습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것을 이어주는 금실, 빛을 내는 실.
그 후 14년이 흘러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시 쓰기와 단편 소설도 좋지만, 장편 소설은 특별한 매혹이 있습니다. 내 삶과 맞바꿔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 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서 삽니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합니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됩니다.
세 번째 장편 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래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에 어떤 것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 여주인공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습니다.
그 다음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이 물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 힘을 다해 배로 기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 번째 장편 소설인 『희랍어 시간』에서는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어가는 남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여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합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합니다.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마침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한강, 노벨상 수상 강연 중에서)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며 글쓰기를 계속합니다. 광주 학살에 관해 쓴 『소년이 온다』에서는 잔학하게 총칼로 시민들을 학살하는 계엄군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하지만 총상 당한 사람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광주에서 계엄군에 살해되었던 수줍고 조용한 성격의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젊은 야학 교사의 물음은 작가의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작가는 자신이 독자들과 사랑과 고통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또 묻습니다.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지난 화요일(12월 3일) 저녁이었습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졸다가 10시 반 조금 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침대에 눕기 전에 휴대폰을 확인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친구로부터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문자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에이, 설마, 하다가, 티브이를 켰습니다. 포고문이 재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들었던 포고문의 문장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 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문장 끝에 나오는 동사가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온몸을 (영혼까지도!) 짓밟는 것 같았습니다. 처단한다, 처단한다, 처단한다…. 내가 사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광주의 잔혹함이 떠올랐고, 젊은 시절의 공포가 떠올랐습니다.
티브이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국회의사당 주위에 군인들과 시민들이 뒤엉켜있었습니다. 헬기 소리도 들렸습니다. 장갑차를 시민들이 막고 있는 광경도 보였고, 군인들과 시민들이 몸싸움하는 광경도 보았습니다. 군인들이 국회의 유리창을 깨고 난입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국회 복도에서 바리케이드를 치며 계엄군을 필사적으로 막는 국회 직원들도 보았습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도봉구에서 낙선한 앵커 출신의 여성은 계엄군의 총부리를 손으로 붙잡고 울부짖었습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계엄해제 표결을 위해 국회위원들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출입이 통제되어 담을 넘어 들어왔다는 국회의원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총으로 중무장한 군인들은 점점 회의장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상황을 보고받았는지 국회의원들 가운데에서도 의장에게 빨리 진행하라는 고성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두 시간여 후에 계엄해제 표결이 통과되자, 계엄군들은 주춤하더니 얼마 후 하나둘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국회에서 계엄해제를 표결하면 대통령은 “지체없이” 선언해야 한다는데 세 시간이 지나도록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 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혼란을 이유로 또 비상계엄을 선언할지 몰랐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세 시간이 3년 같았습니다. 새벽 네 시 반 넘어서야 대통령은 마침내 계엄해제를 선언했습니다. 그렇게 그날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지난 며칠이 몇 년 같았습니다. 나의 현실감각은 지난 화요일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비상스러워졌습니다. 아내와 가족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정적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치 사법 폭력을 저지르던 그를 매스컴은 반란 수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정권 유지와 연장을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동안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상황이었는데, 그날 이후 그는 더이상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금요일(12월 6일)엔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주말에 기독교회관에서 시국기도회가 있으니 참석하겠느냐는 문자였습니다. 이번 주에는 다른 주와는 달리 설교 준비를 일찍 해놨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 그러겠다고 답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제, 토요일 아침, 설교문을 읽어보았는데 남의 글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뜬구름 잡는 얘기 같았습니다. 그냥 할까 다시 쓸까 고민했습니다. 속마음은 다시 쓰라고 하는데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오후 1시로 예정된 시국기도회 시간이 점점 다가왔습니다. 설교를 다시 준비하려면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 표결을 5시에 한다는 뉴스도 흘러나왔습니다. 마음이 어수선했고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나는 종로 5가로 가는 지하철 안에 있었습니다. 기독교회관에서 있었던 기도회에 참석하고 종로 5가에서 종각까지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였습니다. 선후배 지인들도 여럿 보였습니다.
저녁엔 달갑지 않은 소식이 국회에서 전해졌습니다. 여사 특검과 탄핵 표결이 다 부결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국민의 힘 의원들이 회의장을 나가 아예 표결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힘이 빠졌고, 속상했습니다. 설교 준비를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설교를 아예 하지 말고 설교 시간에 침묵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지나친 파격이었습니다.
자포자기한 채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잠을 설쳤습니다. 새벽 3시에 눈을 떴습니다. 좀 더 자려고 유튜브를 켰습니다. 성경을 듣다 보면 잠드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튜브를 켜자마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수상 강연이 스톡홀름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소개한 내용입니다.
사실 노벨상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언제 시간 내어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던 중이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강연은 강연이라기보다 고백적 작품 해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에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평범하면서도 근원적이었으며,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벨상을 수상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당시 노트에 이런 글을 끄적였다고 합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그러면서 그는 또 묻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살아남는 것인가.”
묻고 또 물으면서 작가는 깨닫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자기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이라는 것을. 사랑은 심장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 이미 시로 읊었던 것처럼, “사랑은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의 정체는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마침내 발견합니다.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수상 강연을 듣고 그 여운을 음미하고 있는데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계엄 선포 다음 날인 수요일(12월 4일) 성서일과 1독서 본문이었던 예언자 이사야의 통렬한 경고(사 1:24-31)였습니다.
24 그러므로 주 곧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대적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겠다. 내가 나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여 한을 풀겠다.
25 이제 다시 내가 너를 때려서라도 잿물로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 내듯 너를 씻고, 너에게서 모든 불순물을 없애겠다.
26 옛날처럼 내가 사사들을 너에게 다시 세우고, 처음에 한 것처럼 슬기로운 지도자들을 너에게 보내 주겠다. 그런 다음에야 너를 ‘의의 성읍’, ‘신실한 성읍’이라고 부르겠다."
27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회개한 백성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을 것이다.
28 그러나 거역하는 자들과 죄인들은 모두 함께 패망하고, 주님을 버리는 자들은 모두 멸망을 당할 것이다.
29 너희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우상 숭배를 즐겼으니,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가 동산에서 이방 신들을 즐겨 섬겼으므로 창피를 당할 것이다.
30 기어이 너희는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처럼 될 것이며, 물이 없는 동산과 같이 메마를 것이다.
31 강한 자가 삼오라기와 같이 되고, 그가 한 일은 불티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둘이 함께 불타도 꺼 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다.
해석이 필요 없었습니다. 깊이 묵상할 것도 없었습니다. 읽는 대로 간절한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잿물로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 내듯 우리의 불의를 씻고, 우리에게서 모든 불순물을 없애주소서.”
“술에 취한 폭군이 아니라 슬기로운 지도자들을 이 나라에 보내주소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회복되어 이 나라가 ‘의의 성읍’이 되게 하소서.”
“정의를 거역하는 자들과 죄인들은 모두 함께 망하게 하소서.”
무엇보다 “우상숭배에 찌듣 주술 정권이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그들이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처럼 되게 하시며, 물 없는 동산과 같이 메마르게 하소서.”
“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자가 삼오라기와 같이 되고, 그가 한 일이 불티와 같이 되게 하소서. 이 둘이 함께 불타도 꺼 줄 사람 하나 없게 하소서.”
이런 기도를 적고 있는데 마리아의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눅 1:51-53)
이 노래를 통해 마리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십니다. 민중 위에 군림하는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십니다.
이것이 대림절에 갖는 희망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슴 벅찬 일은 작가가 말하는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인 사랑,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 사랑, 살아있는 가슴에서 팔딱팔딱 뛰는 사랑, 그리고 따뜻한 가슴과 가슴을 이어줄 금실인 사랑으로 이뤄집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광장에서 그 사랑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으며, 금실처럼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 이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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