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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삶) 영적 우정과 영적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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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샬렘 댓글 0건 조회 745회 작성일 23-03-2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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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사랑의 바다에 빠질 때, 우리는 몇몇 동료들과의 새롭고 특별한 관계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관계는 너무나 놀랍고 풍성하기 때문에 그것을 나타낼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이것이 초대 교인들을 결합해 주었던 사랑의 결속, 즉 하느님 나라의 기초라고 생각된다...이같은 경험은 우리의 개인적인 인간관계들을 완전히 새롭게 배열시킨다. 과거에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들과의 교제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과거의 관계들이 행복했던 관계였을 수 있지만 그곳에는 중심이 되시는 분의 깊은 침묵 안에서 함께 거한 적인 없었다는 것을 안다. 완전히 하느님께 매료되고 빛에 중심을 두게 되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와 함께 소일할 수 있는 좋은 친구일 뿐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그들을 만나지 못하면 보고 싶은 생각은 들겠지만 중심이 되시는 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결속해 주는 직접적인 사랑의 관계는 적은 무리의 사람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다. 교제는 천국의 작열하는 불 속에서 그들을 태우고 녹이고 귀하게 만들고 변화시키는 우정을 추구한다.
                        - 영원한 현재 中에서, 은성, 토마스 켈리 -

수도 공동체에 소속되어 동료들과 함께 기도하고, 생활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영적여정을 걷는 수도자들처럼 구도(求道)의 우정을 나누는 일은 영성생활에 큰 유익을 줍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공동의 갈망을 가지고 세상 한 가운데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맺는 영적우정 역시 영성생활에 소중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영적우정이나 동반 관계없이 세속적 관계에 몰두하는 만남과 모임들에 둘러싸인 삶은 분명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복음적 가치와 대립되는 가치들과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지도와 우정은 우리가 세상 한복판을 살면서도, 보이는 세상을 넘어 살아가야 할 하느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참된 자기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지도와 우정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의 포로가 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하는 소중한 지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여정에서 영적 공동체, 또는 영적 우정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어떤 모임이나 사람이 떠오릅니까? 왜 그 만남과 관계를 영정 우정 혹은 영적 공동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관계나 공동체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된 특징들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다음에 소개하는 영적공동체의 8가지 요소는 미국 샬렘영성훈련원 영적지도 훈련과정의 강사였던 Phillip B. Cover가 정리한 내용에 필자의 생각을 조금 덧붙인 것입니다. 

첫째, 영적공동체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하느님을 향한 공동의 갈망과 지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갈망과 지향은 영적인 삶과 공동체의 기초를 이루는 DNA입니다. 베네딕트 성인은 수도승이 되려고 찾아오는 청원자들을 면담하는 분별의 자리에서, 성소분별의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그 사람이 하느님을 찾는 사람인가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공동체는 그것이 일시적인 만남이든, 지속적인 회합이든 그 중심에 하느님을 향한 갈망과 지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둘째, 영적공동체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성령은 하느님과 이웃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거짓 자아들의 경계를 허물고, 하느님 사랑 안에서 상호 연결된 참자아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주며, 사랑과 신뢰에 기초한 안전한 공간을 창조해 줍니다. 하지만 성령은 변화산 위에서 초막 셋을 짓고 영원히 살고자 주님께 청하였던 제자들의 기대처럼 우리를 위안과 안전감 같은 자기만족에 머물러 있도록 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이 증언하는 성령강림 사건처럼 성령은 언어와 인종의 장벽을 허물어 인류를 하나 되게 할 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비젼과 꿈을 꾸게 합니다.

셋째로 영적공동체는 사랑과 신뢰에 기초하여 자신과 자신의 연약함을 기꺼이 열어 보입니다. 어떤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서로 경청하고 받아들입니다, 판단하지 않는 일은 관계에서 신뢰와 믿음을 키워주고, 신뢰와 믿음은 자신이 관계에서 받아들여짐을 느끼게 합니다. 받아들여짐은 기꺼이 자신의 연약함을 열게 하는 연민어린 환경을 창조하고 성장시킵니다. 영적공동체는 자신의 깊은 곳을 노출하는데 안전함을 느끼게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영적공동체 역시 인간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너질 때 상처를 받습니다. 이 때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넷째로, 영적공동체는 인간의 생각과 경험을 넘어서는 기도와 영적 돌봄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적 공동체란 비슷한 성격, 취미, 목적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진정 성령에 의해 함께 부름 받을 때, 서로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이 성서의 증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에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고전 1:26-27) 영적공동체는 우리의 약함과 아픈 곳을 허용하여 주고, 이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는 사랑에 기초합니다.

다섯째, 영적공동체는 홀로 있음과 분별의 능력이 향상 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공동체와 함께 하시면서 동시에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영적 공동체는 기도와 고독으로 물러나고, 다시 돌아와 서로를 위해, 서로 안에서, 서로를 통하여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자신을 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조용한 곳에 홀로 머무는 일은 성령의 활동하심에 보다 열리고, 깨어있는 능력을 향상시켜 줍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이 하느님에 의해 인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별은 영적 공동체에서 본질적인 것입니다.

여섯째로 영적공동체는 인간적 삶의 모든 차원 - 강함과 약함,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희망과 두려움 -을 긍정하고 축하합니다. 공동체는 그 안에서 존재하는 선한 것과 축복, 선물들만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 긴장, 모순을 다 같이 환영하고 가꿀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미국 프란시스회 수도자 리차드 로어 Richard Rohr는 노아 방주 이야기에 빗대어 영적 공동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느님은 그 방주에 어떤 것들을 들어가게 했는가? 정결한 짐승만이 아니라 부정한 짐승, 암컷과 수컷, 기어 다니는 것과 날아다니는 것, 들짐승과 가축. 그리고 하느님은 그들이 안에서 함께 살도록 밖에서 닫아 걸으셨다.” 영적공동체는 그 모두를 감싸 안고 견디며 그 모든 것을 축복으로 전환시켜 가는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일곱 번째로 영적공동체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기도에 주의를 기울이며 서로를 위하여 중보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자신이 돌보던 교우들과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을 찾아갈 기회를 하느님께서 나에    게 허락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로마 1:9-10

우리는 여러분을 다시 만나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    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1데살 3:10

그리스도인들이 이웃과 연대하는 첫 걸음은 기도이고, 세상과 연대하는 첫 걸음도 기도입니다. 진정으로 하느님 사랑 안에서 영적 우정을 나누는 공동체를 이루길 갈망한다면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은 서로를 위한 기도를 시작하는 일일 것입니다. 

여덟 번째로 영적공동체는 서로의 차이(영적 전통, 신학, 언어, 관습과 문화 등)를 존중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영적 공동체를 시작하기 이전에 어떤 가치나 믿음을 공유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이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생각은 다르지만,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열망 가운데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관상적 태도를 공유할 수 있다면, 우리보다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공동체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의 말처럼 궁극적으로 공동체는 ‘우리의 사랑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기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일의 성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고전 12:4-6)

켈틱 그리스도인들 속담에 ‘영혼의 친구가 없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영적 여정을 걷기 원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영적 우정과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 공동체는 친한 친구관계일 수도 있고, 조금 더 공식화 된 영적지도 관계일 수도 있으며, 주중에 만나는 기도그룹일 수도 있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그룹영성지도모임이나 다른 영성그룹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지금 그런 영적 우정의 관계, 혹은 공동체가 없다고 느끼신 다면 마음을 열고 당신의 갈망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들 가운데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과 작은 만남과 모임을 시작하십시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떠오르는 영적 우정 혹은 영적공동체가 있다면 그 우정과 공동체가 더 깊어지고 풍요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잠시 성찰해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속한 공동체 구성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 김홍일 (기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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